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엘리엇(T,S Eliot)의 황무지 중에서
일생 동안 생노병사에 시달릴 인간 세계를 창조해 놓은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위로코자 천상의 음악가인 모짤트를 내려보냈다던가. 엘리엇의 황무지처럼 지난 4월은 일생에서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트라우마에 시달릴 때 나 또한 음주가무와는 무의식적으로 담을 쌓고 있었다.
김제동이 그랬지. 먹고 마시고 놀면서 기억하고 웃으면서 견뎌야 한다고. 오랫만에 시내 나들이를 했다. 템즈 필의 유병윤 상임 지휘자의 전화에 선뜻 차를 몰고 공연장으로 향한 것은 어린 첼리스트의 공연을 오랫동안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집안에서 음악가 한 명 키우기도 벅찬 시대에 세 명의 자매를 그것도 해외 유학을 시켜가며 교육시키고 있는 부모들의 열성도 대단하다 하겠으나 그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연주 수업을 쌓고 있는 세 자매들의 당당함도 팍팍한 해외살이에서 드물게 만나는 기쁨이다.
|
제일 큰 언니인 하임이의 연주를 들었던게 작년 봄이었나. 이제 막 아가씨 꼴이 맺히기 시작하는 17살 하임이의(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콘체르토) 바이올린 연주에 청중들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물 만난 고기인양 템즈 필 유병윤 지휘자는 지휘봉을 날개로 허공을 날고… 에지간한 집 한채보다 비싸다는 명품 스피커로도 절대 감상할 수 없는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하임의 파워풀한 연주가 쏟아내는 파장의 폭포수 샤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풍모를 지닌 막내 송하의( 브르크 스코티쉬 환타지) 연주는 작년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초순이었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교차로에서 듣게 된 송하의 연주. 귀 명창으로 소문난, 클라식 애호가들이 즐비한 랜드마크 아트센터를 가득매운 정기 회원들이 잔기침 소리도 없이 송하의 연주에 빨려들어갔다. 12살 어린 아이의 연주가 아닌, 바이올린과 한 몸이 된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의 연주에 넋을 잃은 청중들은 공연이 끝나고 나서 한 참이 지나서야 박수갈채를 보낼 정도로 어린 음악가의 연주에 깊이 침잠돼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몇 몇 인사들의 초청 연주 문의가 즉석에서 이어졌다.
|
|
이제는 하영의 차례다. 얼마 전 영국에서 독일로 학교를 옮긴 14세의 체리스트의 연주가 내심 궁금해왔다. 순하디 순하게 생긴, 부끄러움 많이 타는 둘 째 하영이가 과연 무대 위에서 연주를 어떻게 펼칠 것인가도 기대되는 대목이었으나 개인적으로 요요마의 첼로에 맛이 갔었던 오랜 전 기억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
|
|
|
세자매의 공통점이라면 악기를 잡는 순간 눈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과 달리 수줍음이 유난히 심한 세자매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이들의 수줍음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하영( 하이든 첼로 콘체르토 in C) 연주에 빠져들더니만 구름 속을 거니느라 사진 찍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
|
젊은 천재 예술가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삶의 즐거움이다. 이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10년 후 즈음엔 전세계 최상급 연주자로 한국을 빛낼 젊은 예술가들에게 갈채를 보내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Knowing it is not as good as loving it; loving it is not as good as delighting in it.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