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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에 대하여

박필립의 고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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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MorningLonDon
기사입력 2019.02.11 11:55

촌놈들이 서울로 대학을 갔다.
대학이라는 것이 고등학교와 달리 수업이 아침부터 죽창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때는 오후에 있다가 어떤 때는 오전 한 과목만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해가 둥둥 떠있는데도 집으로 향해야만 했다.
아는 놈이 없는 까닭에..., 결국 촌에서 올라간 친구놈들과 동숭동 대학로에서 자주 모이곤 했다.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자신들이 겪어내고 있는 서울살이를 풀어냈다.


동국대 입학한 놈이 있었다. 한번은 다른 학과 건물에 친구 찾으러 갔다가 화장실이 급했단다. 간밤 먹은 알콜들이 점심 무렵 밑으로 쏟아지려 하기에 뒤를 손바닥으로 막으며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단다. 벌컥 화장실 문을 여니...아뿔싸...수세식 좌변기가 떡하니 버티고 있더란다. 놈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우리 촌놈들 가운데 수세식 좌변기에 앉아본 놈이 한 명도 없을 때였다. 어떻게 앉는 줄도 모르고..., 결국 밑으로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막아가며 자신이 익숙한 화장실이  있는 단과대 건물로 게걸음으로 가야 했단다.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나중에 다시 그 건물에 갔다가 화장실을 들려 확인했더니 당시 녀석이 열었던 칸만 수세식 좌변기고 나머지는 모두 쪼그려 쏴 변기였단다. 그 칸만 장애인과 교수용으로 좌변기가 놓여있었다고...
"지금도 좌변기에 앉으면 안 나오냐?" 누가 물었다.
"이제 잘 나와. 좌변기에 올라가서 쪼그려서 일을 보거든."

 

우리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나이키를 신는다는 것은 친구에 대한 배신이었다. 누구도 쌀 한 가마니 값이 넘는 운동화를 신지 못했다. 그래도 그 마음을 달랠 길어 없으면 신발에 볼펜으로 나이키 그림을 그려넣곤 했다. 일종의 사이키다.

한번은 서울 출신인 과 친구가 가슴에 나이키 문양과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하얀 티셔츠를 입고 왔다.
"야, 그 티셔츠 나이키 운동화 사면 주는 거냐?" 내가 물었다.   평소 내 목소리가 작지 않은 탓에 강의실에 있던 40여 명의 과 동료들이 다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멀뚱히 그들을 둘러보자...여기 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옷이 얼마나 비싼데...운동화보다 비싸." 녀석이 나이키 옷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이며 말했다.
"상표가 있는 옷을 입으면 상표를 네가 광고해주는데 돈 주고 산다고? 코카콜라 티셔츠도 공짜인데?" 내가 이랬다.

 

결국 서울을 접수해서 시청 국기 게양대에 시원하게 오줌발을 쏘자던 계획은 취소하고 고향에서 겨우겨우 졸업장을 땄다. 그리고 서울 접수를 다시 시도...공장 비스무리한 곳에 다니고 있던 때에 고향 친구들이 떼 지어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딱 이틀간 녀석들과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못했던 서울구경을 하고 공장으로 돌아갔더니 다들 나를 보고 뒤집어진다.
"어이 박형, 고향이 전라도였어?  서울인 줄 알았지." 하며 놀려댔다. 내가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껌뻑이자..."아니, 박형이 사투리를 쓰지 않길래...근데 아무리 그렇지, 고향 친구 이틀 만나고 왔다고 완전 전라도 사투리야."
의도적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내 고향 익산과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온 전주는 남도와 달리 사투리가 심하지 않다. 굳지 사투리를 꺼내 들면서까지 핏대 세울 일이 없었기에 그냥 쭈그러져 있었을 뿐...


영국에 와서도 그 촌티는 벗어내지 못하고 있다. 익산 황등 출신 사투리가 지금도 자엽스럽다. [혼불]작가인 최명희 선배가 언젠가 특강을 와서 한 말이 있다. 40 넘으니까 그동안 잊고 살았던 사투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고...

인터넷으로 뭔가를 갈치겠다고 광고까지 해놓고는 잠시 머뭇거린다. 입성이나 말투가 영국 신사가 아니라 완전 시골뜨기 황등 출신이라서?  노우! 네버!

 

영국 아이들은 명품을 모른다. 교복도 비슷하고 신발도 가방도 그게 그거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상표도 없는 옷에, 시계도 오래되어 누가 주워가지도 않을 것 같은...그래도 이들에게는 수줍음이 남아있다.

언젠가 도버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로 넘어갈 때 였다. 영국 지방 학생들이 프랑스로 수학여행을  가는 듯 했다. 내가 그들 가운데 한 명에게 말을 붙였다. 리버플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우리로 치면 중 3 학생들로 단체 수학여행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 백인 남학생은 나하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얼굴에 홍조가 짙게 배어나왔다. 내가 그러한 그에게 아빠 미소를 지어보이자 배시시 웃었다. 어느 새 우리 주위에 그의 친구들이 둥글게 모여들었다. 그들 중 몇 명에게 이것 저것 물어볼 때마다 그들 모두 얼굴에 수줍음이 드러났다.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서 보드 기문 수줍음을 타는 영국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만날 때면 잊혀졌던 어린 시절을 만난 듯 기분이 묘하게 좋아진다.

애고 어른이고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거나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어쩌면 선진 교육 같기도 하고...수줍음을 타는 우리 새끼들을 보면 그래도 사람에 대한 어려움이 있어야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울 엄니 말씀으로 위로를 삼다가도 어떤 때는 욱하니 치밀어올 때가 있기는 하다만.  나이먹어 뻔뻔해진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에 익숙해지면 뻔뻔해진다. 거짓말과 야한 생각은 가능한 하루에 딱 한번 만 ...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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